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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직원 "동의 없는 임금삭감 황당해"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3. 11. 08:56

며칠 전 예전에 함께 공부했던 동생을 만났습니다. 이 동생은 서울의 한 구청에 다니고 있습니다. 연예인 이야기로 가볍게 시작된 대화는 어느 순간 무거운 경제 쪽으로 흘러가더군요. 아무래도 둘 다 30대 직장인이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가 반토막 나버린 펀드에 한참 동안 열을 올리자 동생이 맞장구를 쳐주었습니다. 열을 좀 식히고 있는데 동생이 구청에서 직원들 임금을 반납시킬 거라고 하더군요. 반납 받은 임금으로 인턴을 고용한다는 겁니다.

정부가 일자리 나누기를 하라고 하니 구청에서도 나서는 거겠죠. 하지만 확보한 재원이 없다보니 직원들의 임금을 떼어 내어 인턴 급여로 쓰려는 것입니다. 이미 서울시도 직원들의 봉급 일부와 경비 절약을 통해100억원 규모의 재원으로 청년 일자리 1천여 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죠.

"하는 일 없이 있는데 걔네들한테 도움이 될까"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청년실업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대학생들이 이명박 정부가 청년실업 정책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삽질'만 하고 있는다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고통을 나누자"는 정부의 정책입니다. 동감입니다. 어려울 때 나누고 서로 도와야죠.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동의 없는 임금 반납입니다. 동생은 직급별 반납 비율까지 정해진 문서를 봤다고 했는데 구청에서는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직원들한테 말도 없이 누구 몇 퍼센트, 누구 몇 퍼센트를 정해놨더라고. 동의도 안 구하고 임금 삭감하려고 하는 게 정말 황당하더라. 우리도 노동자인데 당연히 대화하고 논의하고 해서 동의를 받아야지."

동생은 "일방적인 삭감에 황당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임금 삭감에 대한 토론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국공무원노조도 지난달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자율반납이라는 명목하에 반강제적으로 임금삭감을 강행할 경우 모든 수단을 강구해 총력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죠.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고 하네요.

"그럼 그렇게 건의해서 임금 반납 여부나 폭을 결정하면 되잖아."
"뭐, 나 같은 말단이 문제 삼기가 쉽지 않지, 불만이 있으면서 많이 받아들이는 것 같고..."


만약 동의 없는 임금 반납이 그대로 이루어 진다고 해도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효율성이죠. 동생은 그 돈으로 인턴들 뽑아서 배치해봤자 구청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애 써서 임금 긁어서 인턴들 뽑아봤자 할 게 없어."
"응 기사에 보니까 복사만 한다고 하던데."
"생각해봐. 직원들이 맡은 업무가 있는 상태인데 거기다가 사람들을 더 두면 뭐 할 게 있겠어? 근무시간을 줄여서 업무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말야. 그냥 나와서 있다 가겠지."


"인턴들은 언제까지 근무하는데?"
"12월까지 한다고 하더라. 어차피 12월이 지나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지. 비정규직에다가 하는 일 없이 있는데 걔네들한테 도움이 될까."


직원들은 힘들고 인턴들은 갑갑


지난해 10월 5만여명의 공무원노조 조합원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100만 공무원·교원·공공부문 노동자 총궐기 대회'. 출처 :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현 상황에서 일자리는 나누어질 수 없다는 거죠. 인턴들은 직원이 아니라 인턴일 뿐, '복사맨'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사실 말이 인턴이지 파리목숨 비정규직이죠.

임금을 반납한 직원들은 직원대로 힘들 것이고, '존재의 가벼움'을 느낄 인턴들은 인턴대로 갑갑할 겁니다. 이쯤되면 "고통을 나누자"는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구호는 "고통을 느끼자"로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눈에는 정부가 또 한 번의 '속도전'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네요. 정부, 또한 기업은 노사 합의를 통한 고통 분담과 효과적인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질 때 일자리 나누기가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울한 이야기 그만하자"고 화제를 돌리려던 동생은 안타까워했습니다.

"애들 불쌍하다. 비싼 돈 내고 대학 나와도 할 수 있는 게 인턴이네."



출처 : http://blog.ohmynews.com/gkfnzl/158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