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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왜 성기 노출 장면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나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5. 7. 08:47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한 것 같다. 지금 박찬욱은 가장 논쟁적인 영화를 들고 나왔다. 난 '디워' 이후로 이렇게 영화평이 극단으로 나뉜다는 이야기를 오랜만에 들었다. ‘극단적인 평가’. 영화 개봉 일주일 만에 '박쥐'를 설명할 가장 적절한 문장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박찬욱 영화가 JSA를 제외하고 대중적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복수 3부작과 '싸이보그는 괜찮아'까지. 박찬욱은 대중적인 화법을 구사한 작품을 내놓은 적이 거의 없다. 흔히 박찬욱을 유명감독, 인기감독의 반열에 올린 '올드보이' 또한 빠른 전개와 대중적인 호흡법(장도리 액션, 빠른 편집, 악당-선 대결 등)을 가지고 만든 작품일 뿐이었다. 후반부에 나오는 진짜 진실 이야기는 앞선 대중적 관점에선 최악인 줄거리이다.

또 다른 생각도 든다. 박찬욱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재 감독 봉준호의 차이는 단순히 표현방식의 차이일 뿐인 건 아닐까. 이를테면 이렇다. 똑같이 '죄의식'이란 담론을 다루는데 봉준호는 몽화적인 내면 의식을 재치있게 보여준다. '괴물'에서 괴물에게 잡혀간 딸이 갑자기 매점에 나와 라면을 함께 먹는 장면이나, '살인의 추억' 마지막에 형사 일을 그만둔 형사가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형사의 표정 등등... 

박찬욱은 어떨까. 박찬욱은 죄를 지었으면 내가 죄를 지은 대상이 내 바로 옆 침대에 나타나는 식이다. 돌려 말하지 않는다. 내면을 비추지도 않는다. 그저 내 눈앞에 보이고 만져지고 느껴진다. 죽였으면 그 죽은 자가 나타난다. 오감이 가진 가장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자극과 현상 그 자체를 화면에 표현해 낸다. 우리가 박찬욱 영화에서 불편했던 것은 그 표현방식이 아니었을까.


박쥐에서 재미있는 건 상현과 태주 둘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보완적인 관계라고 할까. 상현이 누리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착점이라고 할까. 욕망과 신을 믿는 사제 사이를 갈등하는 상현. 그 대착점에서 온전히 욕망을 따르는 태주는 또 다른 상현의 모습은 아닐까.
또 '성기노출'과 김옥빈 노출만으로 '박쥐'를 마케팅하는 건 좀 비겁하다. 영화사나 제작자의 홍보전략 입김이 들어간 건 몰라도 그 외에 생각해 볼만한, 생각할 수 있는 꺼리들이 너무도 많다. 영화 속 상징들(죄의식, 구원이라 부르는 종교적 가치와 인간 본능의 대결, 개인 욕망과 공공 선의 갈등)과 언어들을 파헤쳐보기에 너무도 많은 풍성한 텍스들이 숨어있다. 어떻게 해석을 해도 가지치기가 가능한 장면들이 수두룩하다. 

성기노출에 대해 한마디 더. 온갖 송강호의 성기노출에 관심이 많다. 솔직히 좀 짜치다. 길면 2초 3초간 나온 송강호의 거시기 출현은 자살 순교를 결심한 상현의 심리를 그대로 대변하는 장면이다. 혹시 아무 힘없는 성기를 바지춤으로 가리고 투벅투벅 걷는 장면 마지막에 슬쩍 웃음기를 머금은 상현의 모습을 봤는가.

좀 더 이해를 위해선 3번의 경리병원 장면을 봐야 한다. 첫 번째는 흡혈 능력을 얻은 상현이 붕대를 감고 나오는 장면. 병원 환자 부모들은 바이러스를 이기고 퇴원하는 상현을 붙잡고 늘어진다. "날 구원해 주세요" 라며(슬쩍 황우석이 오버랩되는 건 내 오버된 망상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팔을 뿌리치며 겨우 차를 타고 도망치는 상현. "난 당신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어요"라고 말하듯이.

두 번째 장면. 적당히 뱀파이어 능력을 얻은 상현은 갑자기 격리병원 앞마당을 찾는다. 사람들은 구원해 달라며 모이고, 갑자기 상현은 '폴짝' 하늘로 점프해 버린다.(앞을 보게 피 나눠달라는 선배 사제를 죽인 이후 상황) 이상했다. 다른 곳에선 절대 흡혈귀의 능력을 보이지 않던 그가 병원 앞 사람들 앞에선 거리낌 없이 하늘로 점프는 왜...


그리고 마지막 성기 노출 장면. 널부러져 모든 사람에게 성기를 보이고 뚜벅뚜벅 걸어간다. 날아오는 돌들. 슬며시 미소를 짓는 상현. 무엇을 의미할까. 난 이렇게 이해했다. 이것은 신성의 영역을 바라보는 인간들에 대한 직접적이고 확실한 절망을 표현하는 방법일 뿐이라고. 신성의 영역을 바라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과 사제와 뱀파이어 사이의 갈등을 벌였던 자신에 대한 자학적 표현방식 일 뿐이라고.

그래서 좀 거북하지만 힘없는 성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상현의 마지막 순교, 죽음의 길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박쥐의 또 다른 대단함은 '공포' 묘사의 탁월함이다. 쓸데없이 뒤에서 슬며시 나타나 갑자기 사람 놀라게 하는, 싸구려 공포가 아니다. 이를 테면 이런 것, 옥빈이 남편 하균의 입에 대고 칼날을 들었다가 놨다를 반복한다. 카메라는 처음엔 옥빈의 손목 움직임과 똑같이 흔들린다. 

두어번 흔들리더니 하균의 얼굴에 시선을 멈춘다. 입에는 계속 칼날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3센티, 5센티만 더 들어가 힘을 주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순간. 바로 다음 장면이 어떻게 변화될지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나는 무척이나 무서웠다.

이 고단수 공포 속에서 간간히 사람을 웃겨버리는 힘은 또 뭘까. 그래 솔직히 이 영화. 뭐라 설명이 딱히 힘들다. 그게 박쥐다. 아니 그게 박찬욱표 영화다.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 웃게 만드는 힘. 역설과 현실 속, 심각한 장면 속을 단 한 번에 뒤틀어버리는 대사들. "락앤락에 담아서 먹어야 돼", "자 오늘 시마이~", "언젠 귀엽다며, 시팔년아"

아무튼 다른 건 몰라도 지금까지 봤던 영화들 중에서 '영화적 체험'의 극단을 갔다 온 건 확실하다. 심장이 벌렁벌렁, 쿵쾅쿵쾅 뛰는 소리를 영화를 보면서 오랜만에 느꼈으니. 난 이 이유만으로도 박쥐는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ps. 카톨릭에서 왜 이 영화에 대해 코멘트를 하지 않을까. 문제가 되는 장면 무척이나 많은데.. 앞 좀 보게 피를 나눠달라는 선배사제와 상현의 대사가 특히 그렇다. 그냥 덧붙여 말하면 피 나눠달라는 선배 사제를 죽였을 때 상현은 피를 도덕적으로 먹어보려하는 노력들(병원 바닥에 누워 비를 빠는 장면)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다. 그의 개인적 파멸이 이 때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겠다.

ps. 박쥐의 강렬함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면, ‘복수는 나의 것’을 꼭 보시길 바란다. 죄악 - 선 - 악의 뒤틀림은 물론, 송강호가 이토록 무서우면서도 건조한 표정의 미묘한 얼굴을 가진 섬뜩한 배우임을 알 수 있다.

[복수는 나의 것] 복수에 대한 잔혹하고 부조리한 시선

마지막 ps. 김옥빈이 이런 배우인 줄 몰랐다. '팜므 파탈'이란 단어를 온전히 설명해 낸다. "자살한 사람피나 빨아먹는주제에.." 라고 말할 땐 소름이 쫙.. 나쁜 건 아는 데 거부할 수가 없는. 그런 오묘한 느낌. 아무튼 대단하다. 감탄했다.


출처 : http://bluesky98.tistory.com/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