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의 영웅들, 이른바 '축구 올드보이'들의 맹활약이 연이어 쏟아지고 있습니다.
축구팬들조차 잠시 잊고 있었던 차두리가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순도높은 골을 연이어 터트리면서 소속팀의 승리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안정환은 중국 C리그 데뷔골을 한 경기에서 두 골이나 성공시키는 활약을 보였으며, 설기현도 소속팀 알 힐랄(사우디아라비아)에서 '특급도우미'로 스타일을 바꾸며 시즌 막판 인상적인 활약을 했습니다.
차두리-안정환-설기현(사진 위부터, 연합뉴스, 엑스포츠뉴스)
과연 이들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기분좋게 선수 생활을 정리할 수 있을까?
축구팬들 입장에서는 워낙 잘 아는 선수들의 활약이 당연한 것 아닌가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리그 수준, 상대팀이 어땠는지를 떠나 저마다 개인적인 자신감을 찾았다는 것에 상당한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겠습니다.
대표팀에서 공격수 이미지가 강했던 차두리는 독일월드컵 이후 풀백 수비수로 보직을 바꿔 3년 만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으로 성공 가능성을 점차 높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격 본능 또한 잃지 않아 이번 시즌 2골 6도움을 기록하며 공격수보다 더 공격적인 플레이어로 거듭났습니다. 차두리의 '멀티 플레이' 능력은 향후 다른 좋은 팀으로 이적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소속팀을 한동안 찾지 못해 애를 태우던 안정환은 중국에 정착한 뒤,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습니다. 데뷔 후 2경기 만에 어시스트를 기록한데 이어 그 다음 경기에서 곧바로 한꺼번에 2골을 뽑아내며 팀의 순위 상승에 기여했습니다. 겨울동안 개인훈련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데 많이 애를 먹었을 법도 했겠지만 다행히 빠르게 적응해 자신감을 거의 완벽하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유럽 무대를 잠시 접고 사우디 리그에서 뛰는 설기현도 매 경기마다 거의 풀타임 출장해 중요한 고비 때마다 인상적인 공격포인트를 올리며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특히, 골욕심을 내지 않고 같은 팀 공격수에게 완벽하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며 2달동안 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활약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침체기에 겪었거나 좀처럼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올드보이'들이 힘을 내면서 대표팀 출신의 다른 선수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향후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 운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허 감독은 이미 지난 1일 열린 북한전에 대비해 차두리의 활용을 검토하고 현지에 코칭스태프를 파견, 점검해 오도록 하기도 했었는데요.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인다면 누구든 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다는 허 감독의 기본적인 선수 선발 원칙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비록, 최종 선발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어 차두리 카드를 더욱 만지작거리게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허정무 감독이 그 과정의 화두로 세대 교체를 천명한만큼 30대에 접어든 안정환, 설기현, 차두리 등의 발탁이 실제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입니다. 또, 대표팀 명단 발표 전까지 인상적인 활약을 꾸준히 보여주지 못한다면 대표팀 발탁은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6월 초부터 열흘동안 3번의 A매치, 그것도 월드컵 최종예선을 연달아 치러야 하는 부담을 이겨내야 한다는 부분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이 부상자들이 속출해 몇몇 주전급 선수들의 활약이 어려운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베테랑 선수들의 경험이 이같은 부담과 약점을 덜어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혹 선발 출장까지는 어렵더라도 기존 젊은 선수들의 경쟁심, 동기 부여를 위해서 이들의 대표팀 승선이 이뤄진다면 전체적인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대표팀에 합류해 좋은 활약을 보이며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꿈이 모두 이뤄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30대에 접어든 나이에도 변치 않는 성실함과 열정으로 소속팀에서 전성기 못지 않은 실력을 보여준 이들의 소식 자체가 참 반갑게만 느껴집니다. 7년 전, 그들이 보여줬던 모습 그대로 한국 축구의 위상을 세계 곳곳에 알릴 수 있는 역할을 꾸준하게 해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hallo-jihan/16157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