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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용-송인득, 그리워지는 스포츠캐스터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2. 24. 10:57

              

                          이명용 KBS 전 아나운서, 송인득 MBC 전 아나운서 (왼쪽부터)

 

오후 늦게 컴퓨터를 켜면서 다음 메인 인기검색어에 '이명용'이라는 이름이 있기에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교통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한 명의 유명했던 스포츠캐스터가 가시다니...'

 

이제는 고인이 된 이명용 전(前) KBS 아나운서. 주로 농구 경기를 중계하면서 올림픽 때는 배드민턴, 축구 중계도 담당했던, 차분하면서도 명쾌한 중계로 이름을 날렸던 스포츠캐스터였습니다. '아웃오브바운드~(농구)', '하이~클리어(배드민턴)' 등 가끔씩 튀어나오는 특유의 억양으로 관전하는 팬들에 재미를 줬던 캐스터였지만 현장감있고 상당히 분석적이며 침착하고 깔끔한 중계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아나운서였지요. 특히, 농구대잔치가 한창 인기를 끌 때 이명용 아나운서의 멘트에 많은 농구팬들이 울고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후배 아나운서에 자리를 물려줘 브라운관에 나타나지 않더니 오랜만에 들려온 소식이 '교통사고 사망 소식'이라는 것이 그저 안타깝고 망연자실할 뿐이었습니다.

 

이명용 아나운서의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2년 전, 세상을 떠난 故 송인득 MBC 아나운서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도 MBC ESPN에서 독일월드컵, 토리노 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 같은 스포츠 경기 장면을 다시 보여줄 때 송인득 캐스터의 목소리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요. 그만큼 스포츠캐스터 분야에 있어서 정말 독보적이었던, 아니 여전히 생생히 살아있는 것 같은 '명캐스터'입니다. 중계 비법을 따로 노트로 만들어 관리할 만큼 철저하게 준비하고 노력했던 송 캐스터 덕분에 스포츠의 감동을 더욱 많이 느낄 수 있었는데 너무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스포츠캐스터들이 어느새인가부터 소리 소문 없이 브라운관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 그저 아쉽게 느껴집니다. 물론 30년 넘게 스포츠 전문 캐스터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송재익(SBS-축구,복싱), 임주완(MBC-축구,야구,복싱,탁구), 유수호(KBS-배구,핸드볼,야구) 아나운서가 여전히 큰 활약을 보이고 있지요. 그러나 흰머리를 날리며 수십년째 중계 마이크를 잡는 사람이 많은 미국-유럽의 스포츠 캐스터들과 달리 우리는 기존 캐스터들이 너무나 조용하게 소리 소문없이 은퇴하거나 다른 길을 찾는 문화가 '당연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당시 공중파 방송을 통해서 스포츠를 접했던 '스포츠 키드'들에게는 이들을 그저 추억 속으로만 묻어야 하는 실정입니다.

 

'스포츠 캐스터의 전설'이라고 하는 원종관, 임택근, 박종세, 이광재, 이장우 아나운서에 대한 추억이 30대 이상 스포츠팬들에게는 많다고 하는데요. 90년대 초에 스포츠가 무엇인지 처음 접한 본 블로거에게는 앞서 언급했던 송재익, 임주완, 유수호 아나운서 외에 정도영, 김재영, 양진수, 한광섭, 서기원 아나운서에 대한 추억이 더 아련하게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축구 관련 기사를 많이 쓸 정도로 축구에 애착을 갖고 있지만 초-중학생 시절에는 한창 야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야구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한 계기에는 KBS의 정도영, 김재영 아나운서의 중계가 한몫을 했습니다. 정도영 아나운서는 프로야구 세대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유명한 존재였고, 김재영 아나운서는 '숏 땅볼 숏 전진 숏 잡아 1루에 아웃~', '숏 오바~ 안타!' 같은 재미있는 말투로 블로거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캐스터였지요.

 

특히, 박찬호 선발경기 중계를 1997년에 KBS가 독점으로 중계했을 때(이듬해부터는 ITV 경인방송으로 중계권이 넘어갔지요) 정 아나운서는 TV, 김 아나운서는 라디오 현장 중계를 맡았는데 이들 아나운서의 중계를 비교해서 들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 아나운서는 차분하고 조용한 스타일인 반면 김 아나운서는 말투 자체가 워낙 재미있어서 어떤 때는 정말 숨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기 상황이 긴박할 때는 일부러 TV 음량을 줄이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김 아나운서의 멘트를 들으며 경기를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에 제일 기억에 남았던 스포츠캐스터는 하일성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췄던 정도영 아나운서였습니다. 방송 엔지니어 아버지를 둔 친구 덕분에 KBS 방송국 내부를 견학했던 중2 때, 정도영 아나운서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도국을 갔던 그 설레었던 순간을 10년이 지난 아직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KBS에 이들이 있다면 MBC에는 양진수, 한광섭 아나운서가 있었습니다. 허구연, 김소식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추며 맛깔나는 중계로 재미를 줬던 두 캐스터였는데요. 양진수 아나운서는 성우같은 목소리로 간결하고 짧은 멘트로 인상이 깊었고, 한광섭 아나운서는 주로 라디오 중계를 통해서 많이 접했던 캐스터였지요. 특히,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때 한광섭 아나운서가 다른 젊은 아나운서를 제치고 야구 메인 캐스터로 나서 허구연 해설위원과 박진감 넘치는 중계를 펼친 데에는 20년 넘게 쌓아온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만큼 감정도 잘 살리면서 명확한 의사 전달로 시청자들에 좋은 평을 받았지요.

 

축구 중계하면 서기원 아나운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스포츠 캐스터'였지요. 전혀 흔들림없이 냉철하고 정확한 중계 능력은 기본이고, 해설위원 이상의 해박한 지식을 앞세워 맥을 짚을 줄 아는 중계로 시청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는데 큰 역할을 했던 '푸근한 선생님같은' 캐스터였습니다. 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 최다 중계 기록을 갖고 있을 만큼 온 국민이 TV 앞에 모여 느끼는 감동적인 현장에 늘 그의 목소리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했던 그였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스포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마니아층이 두터워지고, 젊은층을 겨냥한 중계 문화가 강조되면서 이들의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2000년대 초에 일선에서 물러나 다른 라디오 방송, 케이블 스포츠채널에서 중계를 하다가 요즘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활약하는 젊은 캐스터들과 옛날 캐스터들의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스포츠로 국민의 마음을 울리게 하는 '공감'을 전달하는 능력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무장해 시청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순발력있고 재치있게 중계하는 능력은 지금의 젊은 캐스터가 훨씬 나아 보입니다. 그러나 연륜과 지식을 바탕으로 '스포츠를 시처럼' 승화시키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중계를 하는 능력은 옛날 캐스터들이 월등하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옛 캐스터, 해설위원의 어록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시간이 지나면 옛것은 하나둘씩 사라지는데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잊는 것 같습니다.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시대에 옛것의 즐거움, 구수함 마저 느껴볼 틈도 없이 너무 빨리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 이제는 추억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따라 문득 故 이명용, 故 송인득 캐스터의 이름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시대를 울렸던 명 스포츠캐스터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hallo-jihan/16157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