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 -- 몽테뉴
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 (2000)> 를 옮긴 책이다. <철학의 위안> 정도로 번역되어야 하나 독자들을 꼬시기 위해 바꾼 것 같다. 요즘 슬라보예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를 읽고 있는데 반쯤 읽다가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어서 잠시 가벼운 책을 읽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집어 들었다. 지젝은 라캉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없이는 해독하기 난해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원제대로 <철학의 위안>이 책 제목으로 제격이나 이미 로마 공화정의 철학자 보에티우스가 그 제목을 써 먹어 버렸기 때문에 국내 출판사에서 비켜 간 것이겠으나 얇살한 수를 쓰지 않아도 우리 나라에 알랭 드 보통 팬들이 많은 관계로 별 문제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정말로 철학을 통한 인생의 위안을 얻는데 그 집필 동기가 있다고 봐야 한다. 정독하고 난 뒤에 소감은 드 보통이 아주 글을 메끄럽게 쓴다는 것과 그의 다른 저서도 모조리 읽을 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저술가라는 점, 철학이라면 송충이처럼 싫어할 사람조차도 철학의 향연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할만큼 쉽게 글을 쓴다는 점을 확인했다.
잘 나가던 로마 공화정의 정치인 보에티우스! 그는 정적의 모략으로 감옥에 갇혀 죽을 날을 기다린다. 독배를 마주한 소크라테스를 연상하면 된다. 신세한탄을 하며 세상을 원망하던 차에 깜방으로 철학의 여신이 찾아 온다. 보에티우스는 철학의 여신과 대화를 통해 마음의 평온을 찾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나는 보에티우스를 읽고 참 좋았다. 오래 전에 '육문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인데 반복해서 읽곤 한다. 아울렐리우스의 <명상록> 보다 좋다고 나름 생각하는데 멋진 양장본으로 출간된다면 장서로 사두고 싶은 책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 현대판 버젼 정도라고 할까? 드 보통이 불러낸 철학자는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몽테뉴, 세네카, 쇼펜하우어, 니체 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기에 연연해 하지 않고 진리의 성전에 몸을 바친다. 인기가 잘 잘못의 기준점이 아니라는 점. 진리에 대한 확신이 죽음조차 기꺼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용기를 내게 한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재정의 한다. 방종하고 멋대로 생활하면서 얻는 쾌락은 애시당초 에피쿠로스가 정의한 쾌락과 멀다. 에피쿠로스에게 쾌락은 곧 금욕적 삶에서 오는 평온 이다. 욕망을 줄이면 쾌락은 자연스럽게 뒤따라 온다. 당신은 쾌락적인 삶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과도한 욕망을 줄이고 운명에 순응하라!
세네카, 그는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였지만 종내에 네로의 광기에 희생된다. 세네카는 인간이 좌절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말한다. 인간에게 언제 불행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 때 인간은 허둥지둥 한다. 세네카는 미래에 일어날 가장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그 상황이 일어 났다고 가정해야 하며, 그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다면 불행 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용기가 난다고 조언한다.
몽테뉴... 나는 일찍 은퇴하여 평생을 다락방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던 몽테뉴 삶을 동경한다. 그는 지식의 쓸모 없음에 대해 말한다.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지식이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다. 몽테뉴 철학이 강조하는 것은 조화로운 삶이다. “우리 인간의 괴로움 중에서 가장 세련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존재를 경멸하는 것이다.” 몽테뉴는 몸을 가진 인간 존재에게 최고의 위로의 말을 건넨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용납 못해 안달을 부릴 것이 아니라, 복잡다단한 육체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기를 그만두고 그것을 그렇게 무서워할 것도 없고 그렇게 굴욕적이지도 않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우리 인간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뭣 모르고 산 책이 집문당에서 나온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 책을 읽어도 내용을 도무지 알수 없었다. 쇼펜하우어는 생에 대한 맹목적 의지가 우리를 이끈다고 한다. 여기서 '맹목적' 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종족 보전을 위한 생의 의지! 그 의지가 표상되는 세계. 생의 철학자인 소펜하우어는 이러한 생의 맹목적 의지로서 표현되는 세상이 쓰레기로 가둑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염세주의자가 되었다. 쇼펜하우어가사랑을 경멸하는 부분에 대한 요약을 보자.
"생의 목적으로 많은 이들이 행복과 사랑을 말한다. 이를 두고 쇼펜하우어는 무의미한 전력투구라 말한다. 사랑이란 것은 성적 관심은 별도로 하더라도, 혐오스럽고, 경멸할만하고, 심지어 상극으로까지 보이는 상대에게 자신을 맡기게 만든다. 이 때 종(種)의 의지는 개인의 의지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자신과 상반되는 특질들에 눈을 감아버리고, 모든 것을 그릇되게 판단하고, 자신의 열정의 대상과 자신을 영원히 묶어버린다. 그런 환상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그 환상은 종족 유지라는 종의 의지가 다 충족되고 나면 금방 사라지고 이제 평생을 혐오하면서 살아야 할 파트너만 남게 된다."
마지막으로 니체가 인간이 곤경에 처했을 때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조언한다. 나는 드 보통이 왜 니체를 끄집어 냈는지 잘 모르겠다. 가장 질이 떨어지는 쳅터 이다. 차라리 보에티우스에 한 장을 할애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거한대로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철학을 통한 삶의 위무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베르테르는 눈물을 닦고 기쁨을 찾는다. 소크라테스, 세네카, 보에티우스,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 등 이 책에 케스팅 된 출연자들 대부분은 불행 속에서 삶을 견뎌냈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들은 세상을 긍정하고 삶의 환희를 말한다. 드 보통은 이들 철학자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삶의 어느 순간에도 좌절해서는 안되며 당신에게 행복은 당신의 마음 먹기에 달려 있음을 우리에게 환기 시켜 준다. 젊은 작가 드 보통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냈고 우리 나라에도 그의 많은 저서가 출간되었다. 나는 단지 책 한권만 읽었을 뿐인데 그가 뿜어내는 매혹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하겠다. 글을 참 잘 쓴다는 생각이 든다. 드 보통이 설정한 눈높이는 고등학생이나 대학교 새내기 정도 밖에 안된다. 철학이 딱딱하고 재미 없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분에게는 철학이 이렇게 말캉말캉하고 재미있고 유쾌하다는 것, 심지어 삶에 유익한 조언도 들러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독서체험을 줄 수도 있다. 선택은 당신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