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
‘여성 가슴’이 개그 소재 될 수 있나?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3. 17. 09:22
나는 개그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특히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는 꼭 챙겨본다. 첫 방송 됐던 1999년부터 지금까지 근 10년간 거의 빼놓지 않고 챙겨봤으니, 개그 프로그램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개콘>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웃음을 준다는 것이다. 각 코너들마다 여러 종류의 웃음을 준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서열화 된 한국사회에서 언제든 한번은 겪어봤을 만한 상황을 제시하며 '공감의 웃음'을 준다.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과 '도움상회'는 현 세태를 살짝 비튼 '풍자의 웃음'을 준다.
여기서 터지는 웃음은 호쾌한 큰 웃음이란 뜻의 '대소(大笑)'나, 명랑하고 쾌활한 웃음이란 뜻의 '낭소(朗笑)'다.
<개콘>이 '대소'나 '낭소'만 주는 건 아니다. 웃음엔 여러 종류가 있다. 몇몇 코너들을 볼 때면 터무니없어서 웃는 '가소(可笑)'나, 어처구니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실소(失笑)'가 흐르기도 한다.
안일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개그나, 자신을 비하하면서 웃기는 개그를 볼 땐 거침없이 '가소'와 '실소'가 터진다. 특히 자신의 신체를 비하하면서 웃기는 개그맨을 볼 땐, 비웃음 '조소(嘲笑)'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가슴이... 가슴이..." 미녀 개그우먼의 몰락
한 개그우먼이 있다. <개콘>의 창단 멤버였다.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대소'까진 아니더라도 잔잔한 '미소(微笑)'를 주던 그녀였다.
그랬던 그녀가 갑자기 이상한 개그를 하기 시작했다. 2003년 '하니'란 캐릭터를 선보였다. 하니 성대모사는 그런대로 비슷하기도 했고 재미도 있었다. 성대모사를 하며 달리던 그녀는 갑자기 넘어졌다. 그러더니 가슴을 부여잡고 일어섰다.
"가슴이... 가슴이... 방패예요. 전경들이 절 갖고 사람들을 막아요."
자신의 빈약한 가슴을 방패에 빗댄 멘트였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조소'가 흘렀다.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한두 번 하고 말겠지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자신의 가슴을 개그 소재로 삼았다.
몇 번을 그렇게 하더니 결국 <개콘>을 떠났다. 창단 멤버이자, <개콘> 최고의 미녀 개그우먼 김지혜는 그렇게 <개콘>에서 사라졌다.
<개콘>에 다시 부활한 '가슴 소재 개그'
자신의 신체를 개그 소재로 사용하는 개그우먼은 김지혜 이후로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최근 다시 <개콘>에서 부활하기 시작했다.
그 시발점은 안영미였다. '황현의 PD의 소비자고발'에서 안영미는 줄곧 가신의 가슴을 개그 소재로 삼았다.
지난 2월 1일 방송에서 안영미는 "'내 것이었던 그대 가슴 작아요'라는 노래가 있다"며 "너가 봤어? ~꺄"라고 멘트 했다. 황현희는 이에 대해 "김혜수 빼고 다 화났어!"라고 맞장구를 쳤다.
지난주 15일 방송에선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무려 두 명의 개그우먼이 자신의 가슴을 개그 소재로 삼았다.
여전히 안영미였다. 안영미는 두 개의 컵라면을 집더니 "아무래도 이쪽 라면(왕뚜껑)이 친근감이 가긴 하지만, 이 라면(큰사발)이 부럽기만 합니다"라고 멘트 했다. 이어 "아마 김혜수씨는 그 정답을 알고 있을 겁니다"라며 김혜수를 재차 언급했다.
최근 '아내의 유혹'을 패러디 하고 있는 '민소매' 장도연도 가슴 소재 개그에 합류했다. '봉숭아학당'에 출연한 장도연은 "요즘 평판이 좋다"는 이수근의 말에, "뭐? 평판이 좋아? 그래 나 평판이다. 뒤로 누워 자는 것보다 앞으로 엎드려 자는 게 더 편해"라고 받아쳤다.
이후 굉장히 안타까운 광경이 벌어졌다. "그럼 나 뒤집어 놓고 밥상으로 쓰면 되잖아. 밥상차려~"하며, 손을 바닥에 짚고 가슴을 위로 향하게 하면서, 심히 안쓰러운 개그를 선보였다. 누가 좀 말려줬으면 좋겠단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시청자는 '조소'를 원치 않는다
난 여자가 아닌 남자다. 남자가 보기에도 이런 개그는 꽤나 불편했다. 남자인 나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 개그가, 여성 시청자들은 얼마나 보기 불편했을까.
아무리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지만, 여성의 신체, 그것도 가슴을 개그의 소재로 이용하는 건 꽤나 부적절해 보인다.
안영미는 최근 '분장실의 강선생님‘에서 물오른 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차들에게 '대소'와 '낭소'를 마구 퍼주고 있다. 비록 임팩트는 없지만 매번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잔잔한 '미소'를 주던 개그우먼이 바로 장도연이다.
시청자의 수준은 꽤나 높아졌다. 가슴이 빈약하다는 것을 억지로 드러내서 웃길 필욘 없다. 그렇게 말초적인 웃음을 원하는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다. 시청자는 안쓰러운 '조소' 대신, 시원한 '쾌소(快笑)'를 원한다.
출처 : http://blog.ohmynews.com/hitandrun/238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