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日 통화전쟁에 아시아 개도국 불똥 튄다
美·中·日 통화전쟁에 아시아 개도국 불똥 튄다
2007.05.15 17:31:0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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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칼이 아니라 돈으로 싸우는 환율전쟁이 치열하다.
특히 미국 중국 일본 3개 강대국이 펼치는 환율전쟁은 과거 중국의 위ㆍ촉ㆍ오 삼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자국의 이익을 강조하면서 상대방에게는 환율 조정을 강요하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두뇌싸움이 `통화 삼국지(三國誌)`라고 할 만하다.
◆ 미ㆍ중ㆍ일 통화 삼국지
= 최근 미국 달러 약세의 원인은 미국 경기 둔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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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은 1.3%로 일본과 유럽보다 훨씬 낮다.
낮은 성장률이 최근 미국 달러화 약세를 설명해 준다.
성장이 안 좋은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이 수출이 잘 되는 상황에서 달러 약세가 되면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달러화는 유로화 대비 사상 최저점 수준에 있지만 유럽 국가들도 과거에 비해 유로 강세를 용인하고 있고, 미국 내에서도 달러 약세에 대한 위기론은 없다.
과거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중국은 경기 과열 염려와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 등 진퇴양난 국면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통화정책보다는 지급준비율 인상, 금리 인상 등 금리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미국은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위안화 절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현재 행복해 하고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이슈가 있었지만 3월 초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났다.
엔화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약한 통화다.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고 있는 달러화마저도 엔화에 비하면 강세다.
일본 수출업체들은 엔화 약세를 즐기고있고, 일본 정부도 `개입 안 하겠다`며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엔화 약세 이유는 엔캐리 트레이드(저금리 엔화자금을 빌려 다른 나라 고수익 자산에 운용하는 것)다.
저금리 일본 돈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주는 뉴질랜드 달러나 호주 달러에 투자한다.
특히 일본은 정기예금 금리가 1%도 안 되기 때문에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해외에 투자한다.
돈이 빠져 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의 정책금리 인상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금리가 낮기 때문에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는 한 엔캐리 트레이드는 유지되고, 엔화 약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달러와 일본 엔화 약세는 경제상황 등 모든 시장 요인들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중국의 위안화 약세 정책(위안화 절상 거부)은 중국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위안화 절상 압력을 가하면서 일본 엔화 약세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동반 약세를 유지하고 있는 삼국 통화를 보면 오히려 세 나라가 똘똘 뭉쳐 `삼국연합`을 구성해 서로 통화 약세와 이를 통한 경기부양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 아시아 개발도상국으로 불똥 튀어
= 통화 삼국지가 문제가 되는 것은 정작 경제성장에 목말라 하는 아시아 주변 개발도상국들로 유탄이 튀고 있다는 점이다.
달러 약세는 달러화 보유 자산을 크게 늘려온 아시아 국가들에 막대한 손실을 안겨 준다.
그렇다면 한국 상황은 어떤가. 한국은 최근 달러화 대비 원화값이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강세 분위기다.
수익성에 타격을 입는 수출업체들은 정부에 특단의 환율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투기성 외국 자본에 국내 시장이 농락당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외국 자본에 원화는 크게 절상해야 하는 타깃은 아니다.
원화 강세는 해외 환투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국내 수출업체의 해지 물량 때문이다.
국내 요인이 더 크다는 얘기다.
한국은 해외 자본이 투자매력을 느낄 만큼 고금리 국가도 아니다.
따라서 원화는 국내 요인으로 많이 오른 상황이고 향후 절상 압력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미ㆍ중ㆍ일 삼국의 통화전쟁으로 가장 타격을 받고 있는 아시아 국가는 인도다.
인도는 경기 과열과 함께 물가도 많이 올랐다.
따라서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가 통화 절상을 용인했다.
게다가 펀더멘털도 좋기 때문에 해외 투자자들이 연일 돈을 싸 들고 인도로 몰린다.
그동안 인도 루피아화가 절상이 안 된 게 이상할 정도다.
인도 경제는 한동안 고성장을 유지할 전망이다.
친디아펀드, 인도펀드 등 해외 자본이 많이 유입되면서 통화 절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 정부는 루피아화 절상 폭에 대해 크게 염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 한국의 고민
= 현재처럼 일본과 중국이 통화 절상 압력을 거부하는 한 원화가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다.
한국 경제의 최대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 경제가 꺾이는데 한국 경제만 잘 나가기는 힘들다.
또 엔화가 강세로 돌아섰을 때 원화만 약세를 보이기도 현실적으로 힘들다.
머지않은 미래에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가 절상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경쟁국 통화가 절상된다면 한국에는 좋은 기회다.
수출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수출업체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얘기는 결국 우리나라 무역과 경제가 좋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면 원화는 더 강세가 된다.
궤변 같지만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곧 원화가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은 저금리도 아니고 중국처럼 정책당국이 막기에도 역부족이다.
원화 강세의 투자심리를 돌리는 게 만만치 않다.
이게 한국의 고민이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외환시장에 별 다른 개입을 하지 않자 최근 국내 시장은 시장 자체 기능으로 과거에 비해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석태 한국씨티은행이코노미스트 / 고재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