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운하, 앞에선 착공식 연기, 뒤로는 도둑삽질
경인운하의 경제성 및 환경성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24일자 언론에서는 국토해양부가 당초 오늘(25일)로 예정돼있던 경인운하 기공식의 무기한 연기를 결정했다며 이의 배경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각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어 놓으며 경인운하에 대한 경제성 논란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착공식을 통해 논란이 확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그러나 수자원공사(이하 수공)가 착공식과는 무관하게 착공은 이달 말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혀 또 다른 파장을 예고했다. 24일 오전 수공의 경인운하 사업본부에 착공 날짜를 확인하고자 연락하니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날짜는 정해진 바 없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24일 오전에만 해도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고 발뺌하던 수자원공사에서 오후에 '‘저탄소 녹색성장’ 부푼 꿈 안고 경인운하 착공'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뒷통수 한번 제대로 친 것이다.
착공식을 진행하지 않고 공사를 시작하는 것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세간의 이목을 끌만한 행사는 진행하지 않되 뒤에서는 조용히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자칫 착공식을 통한 여론의 집중이 대운하 논란으로까지 이어져 경인운하사업 자체가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식의 꼼수다.
설상가상으로 환경부는 졸속으로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해주면서 경인운하 첫삽질의 1등공신이 되었다. 그야말로 모든 정부 부처가 ‘오직 착공’을 향해 손발이 척척 맞게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벌리고 앉았다. 2조 2,500억원의 국민 세금을 들여 진행하는 대규모 토목 공사를 일단 파고 보자라는 마인드로 진행하고 있으니 무엇을 위해 꼬박꼬박 세금을 내야할 지 회의감마저 든다.
이에 25일 수도권공대위는 경인운하 착공강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12시 반 계양역에 집결한 수도권공대위 회원들과 시민들은 먼저 경인운하 연결구간 공사현장으로 이동했다. 현장을 보고 운하반대 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현장에서 만난 대우건설 직원들은 마이크를 사용하지 못하게 엠프를 끄고 차를 끌고 현수막 위로 올라오는 등 퍼포먼스를 거칠게 방해했다. 자신들의 공사구간에서 이런 일을 진행하면 수공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이 이유다. 아직 입찰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수공의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기자회견을 방해하기 위해 진입한 차량의 모습
우여곡절 끝에 퍼포먼스를 마치고 수공 앞으로 자리를 옮겨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조강희 수도권공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오늘 기자회견에는 갑작스런 일정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작태를 규탄하기 위해 100여명의 회원들과 취재진들이 모였다. 박용신 수도권공대위 공동집행위원장, 윤인중 인천시민연대 공동대표,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의 강력한 규탄발언이 이어졌다. 경제성도 없고 환경파괴가 불보듯 뻔한 경인운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한반도 운하의 시발점이 될 현실을 우려했다.
윤병국 부천시의원은 경인운하에 부천운하를 건설해 연결하는 안이 추진돼 부천시민이 물에 다 빠져 죽게 생겼다며 운하 백지화를 강력히 호소했다.
김응호 민주노동당 부평구위원회 위원장은 오늘은 역사적으로 치욕스런 날이라며, 도둑질 착공과 국토부의 경제성 조작, 본연의 업무를 무시하고 환경영향평가를 협의한 환경부를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천주교 수원교구 공동선사제연대 최재철 신부님께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기자회견을 마무리한 뒤 수도권공대위 회원들은 수자원공사 건설단장에게 오늘 일에 대해 직접 묻고 도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지 해명을 듣고자 했다. 그러나 역시나 수자원공사의 문은 경찰들이 굳게 막아섰다.
경찰들은 수도권공대위가 기자회견이 아닌 신고도 안한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며 당장 해산하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해산은 시민들이 할 것이 아니라 온갖 불법과 편법을 자행하고 있는 정부가 해야 한다. 뒤에 숨어서 국민혈세로 건설사들의 배만 불리고 시민의 목소리는 무시하며 경찰들을 내세워 경고하고 협박하기를 일삼는 나라,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이런 나라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20년간 지리한 논쟁을 벌였음에도 경인운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온 힘을 다 해 경인운하의 문제점을 세상에 알리고 운하에 대한 정부의 비뚤어진 욕망을 바로 잡을 것이다.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하는 것, 어느 때보다 이 정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출처 : http://sjustice.tistory.com/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