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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계의 또 한국 때리기인가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3. 14. 12:01


국내 은행들이 내년 말까지 42조원의 신규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정한 피치의 스트레스 테스트 보고서 발표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보고서를 발표한 피치는 영국계 신용평가회사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타임스(FT)가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집중 부각한 데 이어 피치가 이례적으로 테스트 결과를 발표하면서 금융감독당국과 금융권은 `또 영국계인가` 하는 불만감을 표출하고 있다.

피치는 지난 12일 밤 홈페이지를 통해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를 공표하면서 국내 은행들의 단순자기자본(TCE) 비율이 지난해 6월 말 6.4%에서 내년 말에 4.0%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작년 6월에서 내년 말까지 발생할 국내 은행들의 신규 손실 규모는 42조원이라고 분석했다.

은행권의 자본이 이만큼 깨진다는 얘기다. 금감원 측은 고정이하 여신에 대한 충당금이 20% 수준인 점을 감안할 때 국내 은행의 신규 부실 여신이 200조원에 달한다는 가정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국내 18개 은행의 2010년 말 TCE 비율을 전부 공개했다. 작년 6월 말 기준으로 6.7%인 국민은행 TCE 비율이 2010년 말에 4.4%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고 신한 3.9%, 우리 2.9%, 하나 4.6%, 기업 3.5%, 외환 5.1%로 하락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 당국은 국내 은행들 수치까지 언급된 보고서를 공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금융위 측은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한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지만 이 결과를 발표한 것은 일종의 `도덕적 해이`라고 지적했다. 


테스트를 할 때 적용하는 주요 변수와 가정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수행기관의 주관적 관점이 들어갈 수 있고 결과에 대해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특히 피치가 본업에 해당하는 신용등급평가가 아니라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내보낸 것은 국제신용평가사의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영향력을 미치려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피치가 홍콩 베트남 등 아시아권 국가를 상대로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발표했다고 하는데 영국과 미국 은행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는 사실은 들은 게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일각에선 다른 시각도 있다. 피치가 극단적인 가정을 통해 추정한 TCE 비율이 4%라는 점은 한국 은행 건전성을 확인한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다.

내년 말 TCE 비율 4.0%는 현재 시점에서 다른 선진 은행보다 높다. 작년 말 기준으로 씨티 1.5%, BOA 2.8%, UBS 1.1%, 도이체방크 1.2%, 미즈호코퍼레이션 1.4% 등이다. 따라서 부실이 한참 발생하더라도 국내 은행들의 자본은 선진국 은행에 비해 건전하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TCE 비율은 은행의 자본적정성을 측정하는 여러 방식 중 가장 보수적 기준으로 보통주 중심의 자기자본을 총자산으로 나눈 것이다. 인수ㆍ합병(M&A)을 통해 취득한 영업권이나 소프트웨어자산 등 무형자산은 분자ㆍ분모에서 제외한다. 미국 등에선 우선주를 제외해 비율을 산정한다.

이처럼 TCE 비율이 부각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후순위채와 같은 부채성 자본이나 매년 이자를 지급하는 상환우선주와 달리 보통주라는 순수 자기자본만을 보는 것으로 부실 위험에 얼마나 견뎌내느냐를 판단하는 데 보다 적합할 수 있다.

한편 국내 은행들은 다른 선진국과 달리 은행 스스로 보통주 발행을 통한 자본확충이 가능하고 신종자본증권(36조원), 후순위채(64조3000억원) 발행 등 자체적인 자본확충 여력(100조3000억원)이 아직 충분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금융당국은 설명했다. 이는 신종자본증권(기본자본의 30%)과 후순위채(기본자본의 100%) 발행 한도를 고려한 수치다.

한편 피치가 `스트레스 테스트`한 결과에 대해 주식시장은 `일단 지켜보자`는 반응이다. 이날 우리금융은 전날보다 0.61% 상승했고 기업은행(2.96%) 외환은행(1.75%) 부산은행(0.36%) 등은 견조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KB금융과 신한지주는 각각 1.25%, 2.61% 하락했다.

최근 상승폭이 컸던 은행주는 조정을 받고, 상대적으로 상승폭이 작은 은행주가 올랐을 뿐 피치 측 평가가 영향을 줬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라는 평가다.

배정현 동부증권 연구원은 "달러 대비 평균 원화값을 1500원대 중반, 건설대출 부문 손실률 12%라는 수치는 국내 주요 기관들 가정보다 훨씬 나쁜 수치"라고 지적했다.

최악 상황에도 국내 은행 단순자기자본(TCE) 비율이 4%를 넘는다는 피치 측 테스트 결과는 주가에 나쁠 것이 없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영국 은행들이 이 같은 상황에 처하면 이들 TCE 비율은 훨씬 더 나빠질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국내 은행들이 튼튼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