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리국어사전>을 펴낸 윤구병 그는 어느 칼럼에서 국어사전을 ‘애독’한 문학평론가 염무웅이나 어휘의 쓰임새에 밝은 소설가 복거일을 언급한 바 있지만, <모국어의 속살>, <말들의 풍경>, <어루만지다> 같은 저서들을 통하여 우리 말의 관절과 근육과 속살을 ‘어루만진’ 어휘의 고수가 되었다. 예컨대 그는 <한국일보> 칼럼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채우는 것이다. “'비탈'은 '빗[斜, 橫]'과 '달[地]'로 분석된다. 어근 '빗'은 '빗나가다' '빗디디다' '빗맞다' '빗금' '빗더서다(바로 서지 않고 방향을 좀 틀어서 서다)' '빗듣다(말을 잘못 듣다)' '빗뜨다(눈망울을 바로 뜨지 않고 옆으로 흘겨 뜨다)', '빗보다(사실대로 보지 않고 잘못 보다)', '비끼다(비스듬히 놓이거나 비치다 < 빗기다)', '비뚤다[歪]', '비스듬히' 따위의 낱말들에서 보듯, '바로 곧지 아니하게' '가로 비스듬히'라는 뜻을 지녔다. 우리가 '엇갈리다'를 다루면서 살핀 '엇'과 통한다 할 수 있다.” 고종석 같은 고수급 직업 문필가가 아닌 다음에야 클릭질 몇 번이면 낱말 풀이에서 용어 해례에서 연관 검색어와 개념들과 역사상의 흔적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요즘 세상에 사전을 하나의 독서로 대하는 경우는 완전히 사라지고 있는 풍습이라고 하겠다. 저 옛날, 입학이나 졸업할 때 두꺼운 ‘국어사전’이나 ‘영한사전’ 선물하던 세시풍속은 PMP나 전자사전으로 바뀌어 버린 지 오래다. 사전이 그 본래의 취지에 맞게 쓰이는 거의 유일한 연령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아이들이다. 이 어린 연령의 아이들에게 PMP나 전자사전은, 그것을 선물로 주는 악취미의 어른도 없고 그것을 받아서 닌텐도 대용으로 즐겁게 쓰는 아이도 없는, 불필요한 것들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국어사전 하나쯤은 장만해 두기 마련이다. ![]() 세련된 편집과 기품 있는 내용의 <보리국어사전> 보리출판사가 10여년 세월을 바친 <보리국어사전>은 방대한 어휘,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화사한 장정, 격조 있는 본문 레이-아웃, 따사로운 해례, 남북한 어휘의 나란한 기입, 충분함을 넘어서 세상의 모든 풍경을 보여주는 듯한 세밀화 등으로, 단언컨대 만약 집안 거실 탁자 위에 이 책 한 권 놓으면, 아마도 집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사전을 읽는’ 최초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흠, 흠,.... 아무리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블로그지만, 너무 ‘백과사전 월부 장수’ 같은 소리를 했는데, 내친 김에 <보리국어사전>의 ‘곤충’에 관한 글을 하나 옮겨 본다. "이 세상에 곤충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데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곤충을 연구해 온 학자들도 잘 모른다고 해요. 이 세상에는 300만종이 넘는 곤충이 사는데, 그 가운데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80만 종이 넘어요. 그리고 해마다 수만 종이 새로 이름을 얻는대요. 곤충은 물에서 사는 동물 가운데 가장 많아요.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았어요. 우리 눈에 띄는 동물 가운데 가장 작은 것도 곤충 종류예요. 곤충은 몸 크기를 줄여서 아주 적게 먹고도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냈어요. 사람들과도 관계가 깊어서, 사람이 사는 데 도움을 주는 곤충도 많고, 해를 끼치는 곤충도 더러 있어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곤충을 익충이라고 하고 해가 되는 곤충을 해충이라고 해요." ![]() <보리국어사전> 중 갯벌 편 이 사전과 관련된 블로그에서 참조한 바에 따르면, 예컨대 ‘허무’(虛無)에 대하여 다른 사전들은 ‘(인생에)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음’ 혹은 ‘아무 의미나 보람이 없이 헛됨’이라고 설명을 달았지만 <보리국어사전>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것. 또는 아무 뜻이나 보람이 없어 허전하고 쓸쓸한 것’이라고 적었다. 미묘한 느낌의 차이는 그냥 종이 한 장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 <보리국어사전> 본문의 모습 이 귀한 사전의 기획, 집필, 편집에 꽤 많은 사람들의 땀이 배었는데, 그 맨 앞에 엮은이 대표자로 윤구병 선생의 글이 있어, 다시 인용한다. ![]() 변산공동체를 일군 윤구병 선생 (사진 김혜민) 그러고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라도 쉽사리 알아볼 수 있게 우리 말법에 맞는 말 풀이와 고운 입말로 된 용례를 엮어 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산과 들의 동식물과 우리 겨레의 전통문화를 2,400점 세밀화에 담아서, 집집마다 한 권씩 마련해 두고 온 식구가 함께 볼 만합니다.” 윤구병 선생의 이 문장은, <보리국어사전>과는 별개의 기억으로, 오래 전에 지나간 달치까지 모아가며 읽었던 월간 <뿌리깊은나무>의 한 쪽을 읽는 듯한 느낌을 단박에 준다. 연배가 있는 독자라면 잊을 수가 없는 진정한 품위와 격조의 월간지가 저 70년대 중후반의 <뿌리깊은나무>였다. 그 잡지의 한 구절같다. ![]() <뿌리깊은나무> 창간호 한창기라는 한 아름다운 인간의 넓은 품 안의 일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초대 편집장을 맡아 한글 문화 혁명의 중대장 노릇을 한 윤구병 선생의 글과 그림에 대한 감각은 그때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녹슨 적이 없다. 그것은 그가 ‘트렌디’, ‘스타일리쉬’, ‘쉬크’ 같은 말이 아니면 한 문장도 쓸 수 없는 근래의 잡지 종사자들과 달리 타고난 문장 감각과 풍부한 학식, 그리고 무엇보다 진보적인 세계관과 똑같은 것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 기질에 의한 것이었다. ![]() <뿌리깊은나무>에 실린 의견 광고의 하나 윤구병 선생은 일반 기업체의 광고 문안까지 직접 새로 쓰고 고쳐 쓴 월간 <뿌리깊은나무> 때는 물론이고, 철학 박사 논문을 쓰던 1980년대 초에 <어린이 마을>(웅진)을 만들어 천편일률의 어린이 백과사전 월부 장수 시대를 ‘종식’시켰다. 그 무렵의 작품인 <어린이마을>, <개똥이그림책>, <달팽이과학동화>은 여전히 헌책방의 인기 도서이며 그 이후에 나온 수많은 어린이 책들이 윤구병 선생의 이 작업에 크게 빚지고 있음은 ‘알려지지 않는 소문’이다. 창작 글과 창작 그림 책의 시대는 그때부터 비롯된 일이다. 20여 년 전에 출간했던 <모래알의 우화>(보리)를 펴내면서, 초판에 있던 이철수 판화 대신, 직접 드로잉한 그림으로 정갈하게 다시 꾸며낸 사람이다. ![]() 대학강사 시절 (왼쪽) 물론 충북대 교수직을 얻기도 어렵고 그것을 유감없이 버리기도 어려우며 연고도 없는 변산에 가서 십여 년 동안 공동체 살림을 건사하는 것은 더더욱이 어렵지만, 윤구병 선생이 당대의 출판인쇄 맨 앞에서 매우 격조있고 세련된 감각으로 우리의 일상과 어린이 문화에 더없이 귀한 작업을 쉬지 않고 해왔다는 사실 또한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윤구병 선생은 1943년의 오늘 2월 24에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9남매 중 막내인데, 위로 일병, 이병, 삼병......팔병, 구병이라고 한다. 그런데 위로 여섯이나 되는 형들이 한국전쟁의 아비규환 속에서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고, 그래서 슬픔이 일상이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국일보>에 쓴 글에서, 윤구병은 이 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6.25를 맞은 나는 1ㆍ4후퇴 때 고향 근처로 옮아간 뒤로 4년 동안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뒤늦게 든 생각이지만 나로서는 큰 다행이었다. 가족의 비운이 도리어 나에게는 소중한 공부의 기회를 마련해준 셈이었다. 나는 일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자연 속의 삶에서, 생명의 세계에서는 자유와 필연이 하나이고, 생명의 본질은 자율성에 있다는 것도 배웠다. 길섶에서 짓밟히는 질경이를 보라. 저 여린 생명체가 움 돋고, 꽃피고, 열매 맺는 데에는 외부의 간섭이나 통제가 필요 없다. 저절로 그러는 것이다.“ ![]() 산살림, 들살림, 갯살림이 어우러진 변산공동체를 일군 윤구병 선생 (사진 국가인권위원회) “1981년부터 1995년까지 15년에 걸친 앵무새 철학교수 흉내를 끝으로 철부지 농사꾼 흉내로 지난 10년을 살아왔다. 10년 동안 나는 하루도 같은 일을 되풀이한 기억이 없다. 다시 말해서 날마다 새롭게 익혀야 하고, 어제 배우고 익혔던 것이 오늘은 쓸모가 없어지는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 “새로와지고 또 새로워져라”는 공자의 말씀 뒤에 생략된 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 일상 혁명, 문화 혁명, 삶의 혁명을 꾸준히 일궈나가고 있는 윤구병 선생 (사진 권우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