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정규 이닝까지 승부를 가려 더 많은 점수를 기록한 팀이 승리하는 스포츠입니다. 따라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 팀보다 1점만 앞서면 됩니다. 하지만 1점차로는 불안하기에 경기 후반에는 희생 번트나 치고 달리기 등 작전을 활용해 점수차를 벌리려 노력하며, 그것도 쉽지 않다면 짧은 이닝 동안 가장 좋은 구위를 자랑하는 투수를 투입해 승리를 지킵니다. 이 때 마지막으로 투입되는 투수를 마무리 투수라 하며, 마무리 투수는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등판하기 때문에 경기 초반부터 덕아웃에서 지켜보지 않고 락커룸에서 휴식을 취하며 대기하는 경우도 있으며, 단지 그들을 위해 ‘세이브’라는 기록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강팀은 1점 승부에 강한 반면, 약팀은 1점 승부에서 속절없이 역전당하는 일이 다반사로, 따라서 시즌 내내 마무리 투수가 안정된 팀이 곧 상위팀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됩니다.
1점 승부는 대량득점이 가능한 야구의 속성상 끝까지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 그리고 지켜보는 관중들의 피를 말립니다. 1점 차 주자 없는 상황에서라도 홈런 한 방이면 동점이 되며, 주자를 놓고 장타가 터지면 곧바로 역전입니다. 야구에서 장거리 타자, 소위 ‘거포’가 대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홀로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으며, 특히 마무리 투수를 상대로 역전타를 뽑아내며 승리하면, 상대 팀에게는 1패 그 이상의 충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페넌트레이스에서 경기 막판 역전패를 당한 팀이 이후 연패를 기록하며 내려앉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시간을 정해두지 않는 야구의 특성 상 9회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을 때까지 안심은 금물이며, 레니 크래비츠의 곡 제목으로도 유명한 뉴욕 양키스의 요기 베라의 격언,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처럼 야구의 매력을 멋들어지게 설명한 말도 드뭅니다.
야구의 1점 승부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가장 재미있는 스코어라고 말한 바 있는 8:7입니다. 양 팀 합쳐 15점이나 나왔지만 1점으로 승부가 갈렸다면 경기 내내 엎치락뒤치락 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은 ‘이렇게 점수가 많이 났으니 혹시 더 날지도 몰라’하는 생각에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숨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한 경기 당 세 시간 안팎이 소요되는 야구 경기에서 득점이 이루어지는 순간만큼 흥미진진한 순간이 없는데, 이처럼 많은 점수를 기록한 난타전이라면 야구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경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에 비해 1:0은 팽팽한 투수전으로 승부를 보는 경기입니다. 만루 홈런으로 단번에 4점까지 낼 수 있는 야구에서, 1:0은 최소 17이닝 동안 양 팀 합쳐 고작 1득점밖에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1년에 130경기 안팎 이루어지는 페넌트레이스에서 이처럼 1:0으로 종료되는 경기는 보기 쉽지 않는데, 가장 구위가 좋은 선발 투수인 제1선발을 맞대결시키는 것을 가급적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현재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 한화의 류현진과 SK 김광현은, 지난 해 한화와 SK가 18차례 맞붙는 동안 선발 맞대결을 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대투수 롯데 최동원과 해태 선동열은 프로 통산 세 번의 맞대결을 펼친 바 있는데, 첫 번째 대결이었던 1986년 4월 19일 사직 경기에서는 선동열이 최동원에게 1:0 완봉승을 거둔 바 있습니다.) 게다가 타격은 전염병과 같아서 한두 선수가 안타를 기록하면 다른 선수들도 동반 폭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1:0 경기를 보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야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1:0 경기는 지루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처럼 양 팀의 에이스가 등판해 1점을 뽑기 힘들 정도로 호투한 경기야말로 수준 높은 경기입니다. 이 같은 1:0 투수전의 묘미는 지난 월요일 제2회 WBC 1라운드 A조 마지막 경기인 한일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한국 선발 봉중근이 5.1이닝 무실점을 이어갔고, 일본 선발 이와쿠마는 4회초 이종욱에게 내준 볼넷이 화근이 되어 이날 경기의 양 팀 통틀어 유일한 점수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아시아 야구의 맹주 자리를 놓고 자존심 대결을 벌인 한일 양국은 투구수 제한으로 선발 투수가 강판된 이후에도, 한국은 류현진, 일본은 다르빗슈 등 선발 에이스까지 계투로 총동원해 더 이상 실점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기회를 잡은 한국 대표팀이 주루 플레이 미숙으로 추가득점에 실패했지만, 이틀 전 당한 14:2 콜드 게임 패의 치욕을 되갚기에는 충분한 1:0 완봉승이었습니다. 야구와 친숙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 경기를 통해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1:0 경기의 묘미를 흠뻑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1995년 제2회 한일 슈퍼 게임 1차전이 떠오릅니다. 제1회 한일 슈퍼 게임에서 2승 4패로 밀린 한국은 제2회 슈퍼 게임을 맞아 절치부심하며 일본 야구의 심장부 도쿄돔에서 이상훈, 김용수, 구대성, 선동열을 총동원하며 일본 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습니다. 하지만 한국 타선 역시 사사오카를 비롯한 일본의 에이스급 투수 7명을 공략하지 못해 0:0 무승부로 종료되었는데, 당시 국내 언론은 일본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은 투수진의 호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일본 투수들을 공략하지 못한 한국 타선의 한계를 아쉬워했습니다. 그로부터 14년 후, 제2회 WBC에서 한국 대표팀은 같은 장소에서 일본 타선을 꽁꽁 묶으며 1:0 완봉승을 기록했고, 완봉패 당한 일본의 신문들은 ‘홈은 너무나 멀었다’며 타선의 침묵에 따른 패배의 씁쓸함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일본 타선은 3루를 한 번 밖에 밟지 못하고 볼넷을 하나도 얻어 내지 못하는 등 경기 내용에서도 완전히 밀렸기 때문입니다. 한국 야구가 일본을 능가했다고 결코 단언할 수 없으나, 14년 전 한국의 언론 보도를 이제는 일본 언론에서 다시 보는 것 같아 격세지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