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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훈보다 김국진이 더 남자답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6. 8. 09:09

남자답다는 것은 어떤 것을 지칭하는 표현일까요? 남자다움, 남자의 매력이란 것도 결국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평가입니다. 개인에 따라, 시대에 따라, 유행에 따라 선호하는 남성상, 진짜 사나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니까요. A는 근육남이 좋을 수도 있고 B는 호리호리한 지성미를 선호할 수도 있는 거죠. 이렇게 뭐라고 딱히 규정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분명 남자다움은 막연하고 흐릿하지만 틀을 가지고 있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남성들에게 요구, 때로는 강요되는 미덕입니다. 어느 장단에 가락을 맞춰야할지 난감한, 여자다운 여자로 살기 힘든 만큼 남자답게 살기도 어려운 세상이에요. 이번 주 일요일 저녁, 같은 시간에 다른 두 예능 프로그램이 각자 남자다움을 정면에 내세우면서 시청자들에게 선보여졌습니다. 사람에 따라 선호했던 모습은 다를 것이고 느끼는 즐거움도 달랐을 거에요. 하지만, 전 이 모호하고 흐릿한 기준에도 불구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한 남자의 우세승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겐 분명 추성훈보다 김국진이 더 남자다웠어요. 아니, 더 인간답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패떴의 특별 게스트로 초대된 추성훈은 한국계 일본인 이종격투기 선수인 그가 왜 이렇게 한국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이미지의 종합 선물세트였습니다. 무릎팍 도사 출연 이후에 되풀이되어온 익숙한 모습을 친절하게 풀어서 시청자들에게 전달해 주었죠. 구릿빛 피부와 잘 단련된 근육에서 터져 나오는 강인한 힘, 일본의 땅에서 한국의 정신을 품고 사는 풍운아, 해산물을 무서워하고 작은 일에 소심한 의외의 귀엽고 순진한 모습. 그 자체로 잘 완성된 하나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그는 정교하게 짜인 역할극 놀이인 패떴에서 영리하게 자신의 자리를 잘 유지하면서 긍정적인 인상을 획득합니다. 그동안 패떴에서 스타들을 초대하면서 보여 주었던 게스트 우대 방식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조금은 뻔하지만 충분히 효과적인 방식이었죠. 나무랄 데 없는 구성이자 안전한 내용이었습니다.


반면, 남자의 자격은 웃자고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대놓고 징징짜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다소 생뚱맞고 위험한 내용을 내보냈습니다. 억지 감동을 시청자들에게 강요한다는 비난과 그들의 인생사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냐는 냉소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다소 모험적인 시도였죠. 실제로 야심만만 1시즌의 몰락은 툭하면 울어재끼는 게스트들의 감정 과잉에 지친 시청자들의 외면 때문이었고, 척 봐도 멋지기보단 찌질해 보이는 맴버들의 구성은 만들어진 눈물바다에 시청자들의 짜증을 유발할 우려가 컸으니까요. 역시나 프로그램의 리듬은 처음은 억지로 시작해 조금씩 늘어지기 시작했고 방송 내내 공감과 비공감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슬프고 애달프지만 그리 즐겁거나 개운하지 않는 시간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을 다시보기로 틀어놓고 지켜보면서 전 이상하게 남자의 자격이 흘리는 눈물과 그 속에서 혼자 고고하게 서있는 김국진이 더 좋았어요. 분명 패떴이 더 유쾌하고 신나고 훨씬 더 보편적인 웃음을 이끌어냈지만, 그래도 굳이 승부를 가리자면 전 망설임 없이 남자의 자격 손을 들어주고 싶더군요. 분명 시청률은 패떴이 압도할 것이고 추성훈에 대한 대중의 열기는 한층 더 탄력을 받겠지만 전 패떴에서 늘 느끼던 도식적이고 지루한 전개에 가끔씩 짜증났었고, 볼 때마다 아쉬운 이천희, 박예진의 모습이 서글펐고, 무엇보다도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추성훈의 남자다움에 질렸거든요. 재미있고 웃기지만, 방송 시작 전부터 처음과 끝을 모두 예상할 수 있었던 무난하고 안전한, 너무나도 인공적인 모습에 조금 싫증이 났다고나 할까요?


반면 남자의 자격은 훨씬 더 통속적이고 전형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씩 엿보이는 그들의 진심과 제 개인사가 살짝살짝 겹칠 때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지더군요. 삶이 안겨주는 무게 속에서 더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부모님의 소중함,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자식이라는 역할 속에서 조금씩 메말라가는 그들의 삶을 적셔주는 눈물 한 방울은 프로그램이 억지로 짜낸 감동으로 출발했어도 그 끝은 진심으로 마무리될 수 있게 해주는 찐득한 윤활유였어요. 점점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이경규가 털어놓은 일밤에 대한 집착과 아버지에 대한 사랑도 좋았고, 늘 연약해 보이지만 그 위에 자신의 감성을 다시 덧씌운 이윤석의 흐느낌도 울림이 컸었지만, 그 중에서도 제겐 아버지의 무덤에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굳이 자신의 뜻을 꺾지 않으려 유독 두드러지게 서있던 김국진의 매마른 모습에서 더 진심이 느껴지더군요. 프로그램을 위해선 당연히 울었어야겠죠. 오버가 되었든 진심이 되었든 같이 눈물흘리며 그 분위기를 고조시켜주는 것이 방송을 위한 당연한 태도였을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을 지킴으로서 더욱 다른 맴버들의 눈물을 배가시켜주는 모습을 보여 주었어요. 단순히 노련하다고 하기엔 무뚝뚝한 진심이 배어나오는 한 남자의 모습이 조심스럽게 드러나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방송이 늘 진심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예능은 매몰차고 괴로운 현실을 다 드러내기 보다는 적당히 아름답고 적당히 행복한 것으로 포장해서 보여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인공적인 세상 속에서도 지켜야할 인간적인 도리와 상식이란 무언의 경계선만은 존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선 틈을 비집고 나오는 TV속 사람들의 진심이야말로 대놓고 드러나는 사생활 폭로보다 훨씬 더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구요. 이번 주 남자의 자격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의 흔들림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전 추성훈의 정교하게 만들어진 사내다움이 주는 감탄과 즐거움도 분명 좋지만, 김국진의 약간은 딱딱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집스러움이 더 남자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자다움도 여자다움도 결국은 인간다움, 사람다움에서 출발하는 것이니까요. 방송의 요구 앞에서도 자신에게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 미화하고 강요하기보단 그저 있는 것 그대로를 지키려는 우직함. 김국진의 모습이야말로 오랜만에 TV에서 접할 수 있었던 허세와 꾸밈없는 남자다움이었습니다. 남자의 자격이 바라봐야할 모습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꽃중년 만들기를 위해 땀방울을 흘리는 것보단, 이렇게 그 나이 또래들의 내면과 속앓이를 살펴보는 것 말이에요. 외형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이 시대에 그 속의 중심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반가운 만남입니다. 단순히 시청률로만 평가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에요.


출처 : http://v.daum.net/link/3355449/http://raven13.tistory.com/151